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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칼럼] 제주 용눈이 오름에서 사진작가 김영갑을 만나다
성정문화재단 조회수:271 218.155.17.102
2018-12-26 09:33:28

 

제주 사람들은 위대하다

과거 제주도의 눈물과 한의 역사는 바람 잘날 없었지만, 태풍이 지나는 길목에서도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며 억새처럼 바람에 누었다가 일어섰다. 한겨울 칼바람에도 자맥질을 하며 귀한 전복 해삼을 잡는 해녀들의 생명력도 바람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15년 전, 제주 아프리카 박물관의 한종훈 회장님이 ‘김귀욱이가 가장 좋아할 만한 곳이 있다’ 일출봉 조금 못 미쳐 성산읍 삼달리에 한라산이란 의미의 ‘두모악’갤러리를 가게 된 것은 축복이었다.
사진작가 김영갑은 충남 부여 출신으로 제주의 중산간의 오름과 한라산 마라도에 매혹되어 20여년 동안 제주에서 살았다. 가난에 허덕이고 막노동을 하면서 들판의 당근과 고구마로 배를 채우며 필름을 샀다. 외로움 고독과 싸우며 끝내 근육이 풀리는 루게릭 병으로 몸과 영혼까지 찢기우며 제주의 아름다운 모습을 셔터로 건져냈다. 버려진 폐교를 사진 갤러리로 만들고 그곳에서 그는 자연으로 돌아갔다.

천천히 사진 앞에 서면 아스라이 그 무엇이 파도처럼 가슴에 여울진다.그래서 이곳에 오면 눈으로 보지만, 가슴으로 읽어지고 영혼으로 새겨진다. 프레임 속 제주의 모습은 아름다움 이상이다. 갤러리를 도는 동안 가슴 저미고 먼 북소리처럼 다가오는 서러운 아픔은 무엇인가…?
그가 20여 년간 걸으면서 가난으로 루게릭병으로 찢겨진 상처 투성이의 영혼을 붙잡고 외로움, 고독, 슬픔으로 묻혀 사진 속에 남겨 논 언어들….
프레임 안에 소슬한 바람이 분다. 수많은 바람의 눈 중에 가장 슬픈 영혼을 가진 눈이 말한다. 그는 하늘, 구름, 별과 노닐다가 사라진 바람이었다고….
갤러리를 돌고 나면 가야 할 곳.김영갑 선생님이 가장 사랑했던 촬영장소를 찾아 가는 것이다.

용눈이 오름은 화산으로 만들어진 까만 돌과 그 돌들을 잘게부서져 흙이라는 까아만 캔버스 위에 몇 개의 아름다운 곡선으로 올라와 있다.
이 곳에는 정치가 어떻고 사회가 어떻고 가난도 부유함도 없다. 미움도 없고 급할 것도 없고 그저 김영갑 선생님의 영혼처럼 평온하다. 세상 안에 세상 밖의 이야기도
없다. 자연 앞에 나만 있는 것이다. 이제는 부를 수 없는 어릴 적 어머니의 포근한 젖가슴만 있다.
그냥 바라보거나 서있거나 앉아 있어도 빈센트 반고흐처럼 시린 아픔 끝에 절절하고 아름다운 시로 다가온다. 회색 도시에서 쌓인 앙금과 풍진으로 산화되어가는 삶을 치유하고 휘발시켜준다.
오름이란 기생화산인데 갤러리에서 봤던 사진 그대로 찍고 싶어 어렵게 그가 찍었던 출사 포인트를 찾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의 사진은 나의 신앙. 지금 순례자로 성지에 선 기분…. 그의 시선 속으로 들어가 앵글을 잡고 셔터를 누르면서 그의 삶과 곳곳에 서려있는 그의 독백을 읽고 싶어서이다. 그가 그려냈던 사진 속으로 들어가 그 순간만이라도 김영갑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땅거미가 내려앉고 용눈이 오름에 있던 사람들이 다 내려간 중산간의 어둠은 금방 초생달과 푸른 별빛으로 가득차 있다. 지는 해는 별에게 대신 빛내주라고 말한 듯 어둠 속에 태어난 푸른 별빛들이 부지런히 눈을 반짝인다.
별빛이 그려 주는 오름을 가슴에 새기면서 멍하니 앉아있었다. 바람에 낟알 뜯긴 억새만이 간간히 흔들린다. 그때서야 오름은 어렴풋이 신비로운 속살을 보여준다. 고요에 고요를 얹고 평화가 꽃잎처럼 겹쳐진다. 가장 높이 하늘에 닿은 용눈이 오름에서 그는 얼마나 혼자 걷고 혼자 웃고 혼자 울며 카메라로 별, 구름 그리고 바람과 얘기했을까..?

 

제주 날씨는 참 짖굳다

금방 해가 뜨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겨울엔 진눈개비 짙은 안개…. 변화무쌍한 날씨는 카메라를 든 사람의 마음을 애끓게 만든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좀처럼 바뀌지 않은 고집스런 날씨를 보고 아쉬웠지만 원망스럽진 않다. 다음에 또 오면 되니까….
시작이 혼자였고 끝도 혼자여서 흙으로 돌아가 나무가 되고 풀이 되어 꽃피우고 열매 맺기를 소망했던 김영갑. 철도 모르고 돋아나는 이름 모를 야생화 오름의 바람속에 흔들림을 바라보고 오로지 카메라를 친구삼아 평안을 얻고 자연에 순응하며 살았던 김영갑….
나무 한 그루, 돌 뿌리 하나, 하늘에 펼쳐진 구름, 바람과 억새의 노래, 밤하늘의 별빛마저 김영갑의 영혼이 절절하게 적셔져 있다. 여기 저기 김영갑의 영상들이 별처럼 따뜻하게 감싸준다.그리고 흐르는 눈물이 뜨겁다….
그 용눈이 오름에 김영갑이 있었다.

 

글 : 김귀욱 칼럼니스트

(주. 셀라비투어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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