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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천일야화> 인류사를 뒤바꾼 1만 2천년전 괴벡클리 테페 신전발견
성정문화재단 조회수:200 218.155.17.102
2019-02-13 10:20:41

 

최근 터키에서는 괴벡클리 테페 유적지를 찾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1만 2천년전 신전도시인 괴벡클리 테페는 충격 그 이상이었다.

터키 동부 시리아 국경지대에 가까운 산르 우르파 시내 북서쪽 외곽에

있는 작은 언덕에 세상의 상식과 역사 발전 이론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신전 유적이 숨어 있을 줄을 아무도 몰랐다.

1963년 처음 이곳에서 발굴을 주도한 미국 시카고 대학의 고고학자 피터

베네딕트조차 신석기 시대의 흔적이 일부 보이지만 돌기둥이나 바닥은

중세 시대 무텀터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런데 1995년부터 독일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 팀이 20년간 이 지역을

집중 탐사하고 발굴을 계속해온 결과, 이 유적지가 적어도 11,600년 전의

신전과 도시 문명 유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모든 발견이 그렇듯이 괴벡클리 테페도 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땅속에서

꺼집어낸 조각 돌기둥에서 출발했다.

꽤 정교하게 조각된 돌기둥을 보고 돈이 되겠다고 판단한 농부는 이를 시장에

내다 팔려다가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고 한다. 마침 인근에서 '네발리 초르'

라는 또 다른 신석기 유적을 발굴 중이던 슈미트 교수에게까지 이 소식이

알려졌다. 그는 그 농부와 함께 발견 장소를 확인했고, 그 일대에 매몰된

23개의 신전을 찾아내게 된 것이다.

 

T자형 기둥 상단에 양각된 거칠게 포효하는 사자의 카리스마와 생동감은

단순한 원시 시대 예술이라곤 볼 수 없을 만큼 탁월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청동기나 철기의 금속 도구를 만들려는 꿈을 꾸기도 전의 일이다.

비교적 무른 석회암을 단단한 돌로 다듬은 것일 텐데, 원석 하나를 떡 주무르

듯 갈고 깎고 다듬고, 발가락 하나까지 움직이는  듯 세세히 조각해 놓았다.

탁월한 과학 지식을 가지고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또 하나의 위대한 인류가

있었음을 새롭게 깨닫는다.

 

신전의 지름은 30미터, 평균 5미터 높이의 기둥들이 원을 이루며 둘러서

있다. 정교하게 다듬은 T자형 석회암 기둥들이다. 무게가 15톤이나 된다는

돌기둥에는 여우, 가젤, 뱀, 전갈, 멧돼지 같은 다양한 동물들이 살아 움직일

듯 생생하게 조각되어 있다. 아마도 죽은 자의 영혼을 보호하는 의미이거나

우주에 관한 상징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을 것이라 해석하고 있다.

기둥사면에는 알 수 없는 부호와 상징적인 동물들이 일련의 질서와 규칙을

갖고 표현되어 있다. 그들의 독특한 문자이자 소통 방식이었을 것이다.

이는 인류 최초의 도시 유적으로 알려진 이스라엘의 여리고나 아나톨리아

중부 지방의 차탈휘육보다도 2천년이나 앞선 문명이다.

기원전 3천년경 4대 고대 문명이 꽃을 피운 시기보다 무려 7,000년이나

앞서서 인류가 체계화된 도시 문명을 이루고 구조화된 신앙과 사회 체계를

갖췄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게다가 괴벡클리 테페 신전 유적은 기존의 도시 문명이 농경, 동물 사육,

도구 사용을 중심으로 대량 인구의 동원이 가능한 농경·정착 시대의

산물이라는 이론을 깨뜨리고, 농경 이전의 수렵·채취 시대에도 대규모의

도시 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었다는 인류사의 새로운 가설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사실은 23곳이나 되는 신전터를 통해 신석기 시대 사람들

이 주기적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신전을 건설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존의 신전을 계속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덮어버린 후 새로운 곳을 선택

한 것이다. 게다가 갈수록 신전 규모가 작아지고 어떤 곳은 기둥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다. 

그렇게 2천년의 시간이 지난 후, 신전 건설자들은 수렵 시대에서 농경

시대로 접어들었고 이 신전을 영원히 버린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 결과 1만 년 후인 1995년, 현대 인류에게 시간에 묻힌 비밀의

숙제를 고스란히 안겨준 것이다.

 

그런데 아직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괴벡클리 테페에서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거지의 흔적이나 인골이 발견되

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곳이 멀리서 참배하러 오는 신전이었을 가능성

무게를 실어준다. 그렇다면 괴벡클리 테페는 1년에 몇 차례씩 제의 의식을

하거나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 의례를 위해 만나는 회합의 장소였을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도시가 만들어진 뒤에 신전이 건설된다는 문명 발전

단계의 일반론을 무너뜨리는 증거다. 신전이 세워진 다음에 도시가 건설될

수 있다는 또 다른 추정도 이제 가능해졌다.

한마디로 괴벡클리 테페 유적의 발굴은 인류사를 뒤흔들어놓은 일대 사건이

다. 20년간 약 1천여명의 발굴팀이 노력한 결과, 전체 유적의 약 10퍼센트

정도가 발굴되었고 앞으로도 100년 정도 작업이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고대 건축의 미스터리가 풀릴지 기대해 본다.

 

글 : 이희수(한양대 특훈교수 / 성공회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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